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 피어스 (문단 편집) ==== 전반기 ==== || [[파일:external/3.bp.blogspot.com/nba_pierce_400.jpg|width=100%]]|| 피어스는 의외로 전체 10순위라는 낮은 순위로 보스턴에 지명된다. 팀 동료인 라프렌츠가 전체 3순위로 지명된 것과는 달리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 더군다나 마이클 올로워캔디[* 역대 최악의 드래프트 1픽으로 손꼽힌다.][* 올로워캔디는 좋은 신장과 긴 팔,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이상할 정도로 고평가받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출신과 피지컬 때문에 무려 [[하킴 올라주원]]과도 비교될 정도. 데뷔 후 그의 문제는 부상이 잦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성장을 못했다. 이게 포인트. 사실 그는 뛸 때는 그럭저럭 준수한 기량의 롤플레이어였으며 수비존재감도 나름 있었고 블럭슛과 보드장악력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냥 괜찮은 선수를 뽑기 위해 전체 1순위를 뽑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피지컬이 뛰어나다고 해도 드래프트 당시 나이도 만 23세로 많은 편이었고 대학도 4년 꽉 채워서 졸업한 상태였다. 즉, 그는 성장가능성을 드래프트 당시 이미 거의 소진한 상태였다는 것. 물론 그는 만 18세가 되어서야 농구를 시작했다는 건 있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때 농구를 시작한 [[팀 던컨]]의 예만 봐도 아무리 농구를 늦게 해도 대학에서 4년이나 다니면 이미 농구선수로 거의 완성이 된다. 이걸 간과한 클리퍼스는 도박을 했으며, 폭망한 셈.]라는 성씨도 이상한 녀석이 떡하니 전체 1순위 지명인것도 그렇고, 또 어디 [[디르크 노비츠키|독일에서 갑툭튀한 녀석]]이 자기보다 높은 순위로 지명되자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했을 것이다. 이때 피어스는 인터뷰를 통해 '''"지금 날 지나친 9개팀[* 당시 지나친 9개팀은 [[LA 클리퍼스]], [[밴쿠버 그리즐리스]], [[덴버 너겟츠]], [[토론토 랩터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댈러스 매버릭스]], [[새크라멘토 킹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밀워키 벅스]] 등이었다.] 은 반드시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고 선언했다.[* 실제로 보스턴은 노비츠키를 노리고 있었다. 2,3순위 지명 정도로 예상되던 폴 피어스가 자기 순번까지 떨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당시 주가가 별로 높지 않던 유망주 노비츠키를 뽑으려고 한 것. 98클래스의 루키 시즌은 빈스 카터와 제이슨 윌리엄스가 양분하긴 했지만 사실 당시 기준으론 두 선수가 그 정도까지 압도적인 루키시즌을 보내리란 예상이 많이 없었다. 카터는 오히려 팀동료 앤트완 재미슨에게 대학시절 어느 정도 가려졌었다. 즉, 현 시점으로 보면 98드래프트는 상당한 풍작이지만 당시 기준으론 확실한 1순위감은 없이 비슷비슷한 수준의 괜찮은 유망주들 사이에서 뽑는 양상이었다. 이 때문에 센터이고 체격과 운동능력이 좋은 올로워캔디가 도박성으로 뽑힌 것. 피어스 역시 1픽 가능성이 있었고, 이 때문에 훗날 고향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클리퍼스에 뽑히길 은근히 바랬다고 밝힌바 있다. 여담으로 보스턴의 릭 피티노 감독은 기대도 안했던 대어가 자기 순위까지 떨어지자 놀라서 캔자스의 로이 윌리엄스 감독에게 전화해 혹시 건강에 문제라도 있는거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만큼 이변이었던 것.][* 이 일은 피어스가 2021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때도 피어스가 직접 언급한다. 열정에 기름을 부어버린 그때 그 아홉 팀에게 고맙다고..] 당시 보스턴은 NCAA 켄터키의 감독으로 주가가 오른 릭 피티노를 감독으로, 켄터키에서 뛰었던 선수들과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로 로스터를 꾸렸고, 피어스 이전에 켄터키 출신의 [[스윙맨]] 론 머서와 포워드 [[앤트완 워커]]로 팀의 공격 중심을 잡아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드래프트에서 운좋게 피어스를 뽑게 되었고, 머서-피어스-워커를 동시에 선발로 기용하면서 나름 젊은 트리오로 각광받기도 하였으나, 세 사람의 조합이 아주 좋지는 않았고 또한 머서가 연봉문제로 팀과 불화를 빚으면서 결국 트레이드. 보스턴은 이후 익히 알려진 피어스-워커의 '다이나믹 듀오'를 중심으로 팀을 리빌딩하게 된다. 첫 시즌, 피어스는 평균 16.5점. 6.4리바운드 2.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올 루키 퍼스트팀에 뽑혔다. 그러나 당시 팬들의 관심은 하늘에서 예술을 펼치는 [[빈스 카터]]와 땅에서 예술을 펼치는 [[제이슨 윌리엄스]]의 차지였다. 아마도 처음에는 팬들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주목도 이다. sf/sg 포시션인 맥그레이디, 아이버슨, 카터, 코비에 비해 덜 유명했지 꾸준히 올스타와 올 nba에도 이름을 올렸고 플레이오프, 클러치상황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여주면서 주목을 받았다. 또한 2001-02시즌 부터는 리그를 대표하는 스윙맨 선수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무엇보다 피어스가 오기 전 까지 셀틱스는 팀 명성만 명문이지 [[래리 버드]]은퇴 이후 철저하게 비주류 팀이였다. 그나마 앤트완 워커가 96년에 합류하고 올스타레벨로 성장하며 조금씩 보스턴의 존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피어스는 계속해서 자신의 기량을 향상시켰다. 기존에 있었던 앤트완 워커가 점점 3점슛만 던져대면서 서서히 망가져가는 사이 피어스는 견실할 플레이로 보스턴에 리더이자 팬들의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그런데 3년차 시즌에 위기가 찾아왔다. 피어스는 2000년 9월 25일. 한 클럽에서 괴한이 휘두른 칼에 찔려 얼굴, 목, 등, 폐를 포함해 무려 '''열한'''군데나 칼빵을 맞았다. 보스턴 구단과 팬들은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그것도 시즌 개막이 한달 앞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피어스는 '''한달후에 바로 개막전을 뛰었고,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전 경기를 다 뛰었다.'''[* 이게 왜 대단한 것이냐면, 단순한 부상이 아니라 저 정도로 칼에 찔리면 일반적으로 생명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 그것도 복부나 폐는 심한 경우, [[과다출혈]]로 인한 '''[[즉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부위다. 팔이나 다리 같은 경우에는 최악의 경우 장애나 후유증을 앓더라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복부나 폐는 부상 정도에 따라 바로 생명으로 직결될 수 있는 부위다. 피어스는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부위에 집중적으로 습격을 당했음에도 회복했기에 더욱 놀라운 것이다. 단순히 시즌 아웃, 선수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까지 위독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 시즌에 피어스는 [[래리 버드]] 이후 어느 보스턴 선수도 하지 못한 시즌 2000득점을 기록했다. 그 많은 칼빵을 맞고 선수생활을 할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선수가 그야말로 날아다닌 것. 팬들은 그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당시 클럽에 함께 있었던 동료 토니 베티와 그의 동생이 피어스를 안전하게 구한 후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큰일났을 것이다. 다행히도 급소를 모두 피했다고. ~~억세게 운이 좋은 사나이다.~~[* [[보스턴 셀틱스]] 문서에 나와 있지만, 셀틱스의 암흑기 원인이 되었던 렌 바이어스, 레지 루이스의 요절 사태를 한번 더 겪을 뻔했다. 그래서 피어스에 대한 셀틱스 팬들의 애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2001-02 시즌. 보스턴은 49승 33패를 기록하며, 1992-93 시즌 이후 오랜만에 5할 승률을 기록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 단숨에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가는 돌풍을 일으켰다. 여기서 피어스는 컨파에서 뉴저지 네츠를 상대로 명승부를 펼쳤는데, 컨퍼런스 파이널 3차전에서 그는 28점을 넣었는데 이중 19득점을 '''4쿼터에 몰아넣었다.''' 참고로 보스턴이 4쿼터에 기록한 득점은 21득점. 혼자서 팀의 4쿼터 득점을 다 해먹은 것이다. 폴 피어스를 4쿼터만 되면 주시할 수밖에 없게 된 건 바로 이때가 시초였다. 하지만 피어스의 이런 미칠듯한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팀은 2승 4패로 탈락했고, 다음 시즌에도 뉴저지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맞붙었으나 이번에는 4전 전패로 맥없이 탈락했다. 그리고 보스턴은 다시 빠르게 몰락해가고 있었다. [[6성 슈가]] 중 한명으로 꼽힐 정도의 활약을 하고[*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슈팅 가드 6명. 멤버는 [[코비 브라이언트]],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빈스 카터]], [[앨런 아이버슨]], 폴 피어스, [[레이 앨런]]이 꼽힌다.] 2003-04, 2004-05시즌에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모두 1라운드 탈락이었다. 2005-06 시즌과 2006-07시즌에는 아예 플레이오프 진출도 실패했다. 피어스는 팀이 패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팀에 대한 불만이 커질대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앤트완 워커가 팀을 떠난 이후 리빌딩도 아니고 강팀 반열도 아닌 어설픈 팀 정책으로 피어스의 전성기가 2시즌(05/06과 06/07)이 허무하게 날아간 것이다. 당시 팀 로스터는 피어스를 제외하면 처참한 수준의 선수진 이였고 오직 루키 [[라존 론도]]만이 경쟁력이 있었으나 루키 시즌당시 즉시 전력감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당시 허약한 동부지구전력에서 셀틱스는 어정쩡한 영입정책으로 오직 피어스만 바라보는 꼴이였다. 그래도 피어스는 일단 별다른 움직임없이 한번 더 참았다. 2007년 드래프트 순위 발표를 앞두고, 당시 대학 최고의 [[센터(농구)|센터]] [[그렉 오든]]의 드래프트 참여가 확정되면서 2006-07 시즌 24승 58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둔 보스턴이 1픽을 받고 오든을 뽑아 팀이 강해질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지만, 애꿎게도 당시 셀틱스의 픽순위는 톱3를 건너 5픽으로 드래프트 순위마저 망.[* 2007년 드래프트에서는 포워드 제프 그린을 지명했으나 직후 [[레이 앨런]] 트레이드로 시애틀행. 그린은 2011년에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온다.] ~~오든을 뽑았어도 그닥..~~ 06-07시즌 까지 피어스도 슬림한 체형이였는데 빅3 시절부터 살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30대가 가까워지고 운동능력 감소가 나타난점을 몸으로 느꼈는지 파워를 늘리는 방향 몸매 관리를 바꾼듯 하다. 그리고 07-08시즌 혹은 00년대 후반의 체형이 철저하게 은퇴시즌까지 유지되었으니 철저한 자기관리로 nba커리어를 마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